건포도 : 헤어질 결심이니까. 연결, 물결, 그리고 미결이라고 정리해 보고 싶어요. 먼저 연결은 사랑과 추리라는 연결시키면서 미묘한 남녀의 관계를 재치 있고 상징적으로 다뤘다라는 점에서고요. 물결은 영화에서 언급된 것처럼 '잉크'처럼 스며드는 정서를 느껴서... 이야기를 음미할수록 물결처럼 무언가에 천천히 스며드는 감정이 생겼던 것 같아요. 마지막 미결은 사랑이라는 건 영원한 미결이다라는 걸 영화가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아서… 근데 이거 오글거리네요.🤣

  피스타치오 : 흐릿하게 결을 망가 뜨린 사진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하려는 이야기가 분명한 작품입니다. 하지만 연출이 흐릿해서 잘 보이진 않아요. 그럼에도 더듬더듬 그 결을 짚다보면 묘하게 짚히는 공감의 영역대가 있고요. 모호했지만 그 모호함을 전달하는 수단들은 친절해서 그렇게 느꼈던 것 같아요. 대사가 오고 가는 호흡도 안정적이었고 서사도 과격한 와중 군데군데 따스함을 숨기고 있었던 것 같아요. 아무래도 작품의 입체성이 다각적으로 발휘되어 이렇게 느꼈던 것 같습니다.

  마카다미아 : 비린내 풍기는 시집. 각본집을 처음 읽어보는데, 시집같다고 느꼈어요. 행간을 음미하는 재미가 컸거든요. 피비린내 그리고 지배적인 이미지 중 하나인 바다의 비린내를 함께 이야기 하고 싶어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캐슈넛 : 각본집은 아무래도 영화를 보고 영화를 간직하기 위해 사야겠다. 박찬욱 감독은 미장셴이 유명한 감독이잖아요. 하지만 미장셴 없이 온전히 상상으로만 따라가야 해서 아쉬움을 느낄 수 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호두 : 한 발짝 떨어져서 보기엔 아까운 작품, 이 작품을 본다면 한 발짝 더 들어가서 즐기셔야 합니다. 저는 이렇게 소개 드리고 싶어요, 인물 설정이나 이들의 관계성, 핵심 소재, 전환되는 분위기를 따라 오지 못하게 되는 순간 재미를 잃는 작품이라 생각하거든요. 작품 속 인물들을 단순히 조감하고 이들이 벌이는 사건을 '치정'이나 '탐욕'이라 정의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깊숙이 들어가 바라봐야만 보이는 것들이 있다. 그러니 충분히 빠져들어 즐겨야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아몬드 : 읽으면서 많이 느낀 게, '서래가 매우 불쌍하다'. 작 중에서 서래는 많은 것들과 헤어질 결심을 하게 되는데, 그게 서래가 헤어질 결심을 잘하는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자신을 둘러 싼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헤어질 결심을 해야하는 사람이었던 거 같아서...😢

  아몬드 : 속도를 조절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분명 통과해야 할 장면인데, 다가올 명장면을 위해 없어서는 안되는 장면인데...! 눈꺼풀이 감기는 순간들이 있으니까요. 정리하자면, 예상 가능한 '빌드업' 장면들을 속도감 있게 지나칠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아요. 단점은 역시나 각본집이었던 만큼 시각적인 자극이 제한되는 점? 

  호두 : 가장 차이를 느꼈던 건 영화에선 그 자체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있었던 촬영 기법들 같아요. 인물을 담는 각도라든가 심리를 풀어내는 연출이라든가, 그런 게 없어서였을까요. 약간 아쉽게 느껴졌어요. 반대로 대사 하나하나를 곱씹을 수 있는 건 확실히 각본집만의 매력이었던 것 같고요. 영화를 볼때는 장면이 저희를 지배하며, 순간순간에 감상에 젖어가지고 푹 몰입하도록 만들었다면 각본집은 저희가 능동적으로 대상 하나하나에 담긴 감정, 인물들 사이 오고 가는 묘한 기류 같은 걸 읽어내는 재미가 있었던 것 같아요. 

  건포도 : 영화냐 각본집이냐. 개인적으론 영화를 보고 각본집을 보는 게 좀 더 감상에 도움을 주진 않을까 생각했어요. 이야기 자체는 단순하지만. 편집, 배치, 미장센 등을 가미하면서 살아나는 작가주의적인 요소가 박찬욱 감독의 영화에는 굉장히 많거든요. 아가씨 때도 그랬지만 축약되는 점도 많고, 대사로 하면 될 것을 그냥 눈빛이나 아니면 행동으로 그냥 넘겨버리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그래서 항상 두 번씩 봤던 것 같아요. 이번엔 대본집으로 2회차를 대신했는데. 그만큼 새롭게 보이는 점도 많았죠. 대사. 대사가 전하는 감동이 보다 진하게 다가왔던 것 같아요.

  마카다미아 : 저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 점도 있었어요. 텍스트 자체로도 묘하고 되게 개성 있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그래서 감독이 시각적인 요소를 조형하는 능력도 강하지만 이야기 자체를 구조화하는 힘도 탁월하구나 새삼 느꼈고, 영화를 보면서 사실 눈물이 날 것 같다거나 하는 장면은 없었는데 각본집을 읽을 땐 그런 부분이 많았어요. 좀 전에 시집이라고 했던 것처럼, 마음을 울리는 대사가 있으면 노래를 듣듯 그 부분을 반복해서 읽고 나의 입장을 계속 대입해보고 하다 보니까 더 오래 간직할 수도 있었고요. 

  피스타치오 : 저도 비슷했던 것 같아요. 미남과 미녀가 나와서 인물에 애착을 빠르게 느낄 수 있다. 이 정도가 영화의 강점이었던 것 같고, 나머지는 각본집이 좋았어요. 이미지가 개입하는 순간 상상력이 많이 제한되는구나 싶었거든요. 박해일과 탕웨이가 대체불가능한 배우인가... 싶기도 했고요. 

  마카다미아 : 공감해요. 그래서 중국인 남자, 한국인 여자 배우를 캐스팅한다면 어떨까하는 상상도 했었거든요. 일단 해준 역엔 양조위! 양조위가 눈빛이 따뜻하잖아요. 해준이라는 인물은 대사가 많지 않은 대신 행동 하나하나에서 섬세하고 다정한 사람이라는게 느껴지니까, 양조위가 딱이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여배우는 강하면서도 불쌍하고, 한편으로는 비정함이 느껴지는 배우들... 하지원이나 한예리가 어떨까 생각해 봤고요.

  마카다미아 : 저는 두 개 선정했는데요. 첫 번째는 '슬픔이 파도처럼 덮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물에 잉크가 퍼지듯이 서서히 물드는 사람도 있다' 두 번째는 좀 뜬금없을 수 있는데... '방수는 물에 닿아도 물 안 들어간다는 뜻이에요.' 특히 두번째 대사가 너무 좋았어요. 이 대사 다음에 서래가 진짜 방수가 되는지 그 밴드 위에다 향수를 뿌려보거든요. 그 장면까지 이어지는 디테일이 좋았고 이 대사에서 해준의 성격이 많이 드러나요. 쉬운 단어지만 당연히 알 거라고 생각 안 하고 한 번 더 설명해 주는 그 모습이 너무 좋았어요.

  건포도 : 저는 특이하게 정안의 대사  "당신은 살인도 있고 폭력도 있어야 행복하잖아" 이 대사가 마음에 남네요! 정안이라는 캐릭터가 참 독특하고, 해준하고 나누는 대화들이 전부 재밌어요. 또, 서래보다는 정안이 해준에 대해 '정안스럽게' 더 잘 알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대사인 것 같아서 인상적이였어요.

  호두 : 저도 두 개 할게요. 먼저,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심장이 아니라. 내 숨소리를 들어요, 내 숨에 당신 숨을 맞춰요. 이 문장에서 서래에게 빠질 수밖에 없었던 해준이 이해가 됐어요. 그냥 잘 자라고 해도 될 말을 저렇게 들려주는데 마음이 훅 넘어갈 것 같아요. 두번째로는 서래가 붕괴라는 단어를 사전에 쳐보게 만든 해준의 대사. 이제 나는 완전히 붕괴됐어요. 그리고 뒤따르는 사전적 설명, 무너지고 깨어짐. 이것도 좋았던 것 같아요.

  마카다미아 : 서래의 명대사가 많았어요. 서래가 외국인인만큼 표현이 일단 일상적이지 않으니까.

  아몬드 : 저는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순간 당신의 사랑이 끝났고 당신의 사랑이 끝나는 순간 내 사랑이 시작됐죠 이거 좋았고, 저 폰은 바다에 버려요. 깊은 데 빠뜨려서, 아무도 못 찾게 해요. 이거 두 개!

  건포도 : 아몬드님이 아까 첫 번째 말씀하신 대사가, 그냥 헤어진 결심을 한번에 정리해주는 대사인 것 같아요. 근데.. 너무 말로 해서 좀 아쉽기도 해요. 그걸 느끼게 해줄 뭔가가 있을 거란 생각을 했는데 너무 한 번에 다가오니까.

  피스타치오 : 공자님 말씀에 지혜로운 자는 물을 좋아하고 인지한 자는 산을 좋아한다고 했습니다. 나는 인지한 사람이 아닙니다. 난 바다가 좋아요. 저는 이 부분이요. 두 주인공이 근본적으로 다를 거라고, 이분법을 들어 예고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좋았고. 하나 더 꼽자면 역시 번역기가 전달해 준 그 친절한 형사의 심장을 가져다 주세요. 나는 좀 갖고 싶네. 오해라면 오해인 부분이지만 정보가 부족한 상태에서 서래라는 인물의 속성을 오싹하면서도 서늘한 감각과 함께 느끼게 했던 대사 같았어요.

  마카다미아 : 대사는 아닌데 강렬했던 장면 하나 더 말하고 싶어요. 서래와 해준이 뼈 가루를 뿌리러 산에 올라갔을 때, '거기서 발소리 듣는 해준, 죽음을 각오한다'라는 부분이 있거든요. 근데 서래가 밀지 않고 뒤에서 안아주는 장면이 있는데 그 장면이 인상적이에요. 거기서 죽음을 결심, 아니 각오할 정도로 서래라는 인물에 스며든 해준의 모습이.

  호두 : 근데 해준, 서래 제외 최애 캐릭터라면.. 다 같으실 것 같아요. 정안 아니면 수완 아닌가요?

  건포도 : 맞아요. 그만큼 매력적이었으니까요. 공무원들이 꼭 스몰토크로 통계 얘기 많이 하잖아요.(농담) 정안이라는 캐릭터가 등장한 시간이 길지 않았음에도 깊은 인상을 남겼던 건. 살아 움직이듯 치밀하게 구현된 캐릭터였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또 해준과도 은근히 닮은 구석이 있어요. 서래와 해준이 근원적인 부분에서 닮았다면, 정안과 해준은 세속적인 부분에서 서로를 지탱해 줄 수 있었던 인물들 같다고 느꼈어요.

  아몬드 : 저는 최악의 캐릭터! 기도수! 특히 기도수의 문신. 이게 잊혀지질 않네요. 폭력적이고 소유욕 강한 기도수의 성격을 드러내는 번개 같은 문신. 폭력을 정말 완곡하게 드러내는 방식이잖아요. 제가 진짜 제일 싫어하는 인간 군상 중에 하나거든요. 자기 열등감 때문에 타인에게 집착하고 구속하려하고. 정말 최악인 거 같아요.

  마카다미아 : 저는 영화 기준이랑 각본집 기준이랑 다르거든요. 영화 기준은 이지구라고 처음에 잡히는 범죄자가 있어요. 그리고 각본집 기준으로는 홍산오인데요. 등장할 때마다 너무 강렬했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불도저처럼 무식하게 질주하는 그 감정이 인상 깊었습니다.

  호두 : 저는 수완이요. 개인적으로 영화를 보는 내내 불륜을 저지르는 해준을 향한 분노와 두 사람의 절절한 사랑에 대한 몰입의 감정, 이 두 개가 계속 충돌했거든요. 그 와중에 수완이 답답하게 느껴질 만한 부분을 꾸준히 긁어 줬던 것 같아요. 해준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경찰으로서의 긍지를 다각적으로 보여줬던 캐릭터였기도 해서 이 인물이 없다면 해준이 지금처럼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았을 것 같아요.

  건포도 : 맞아요. 결국엔 '사람'을 배제하고 수사를 했던 수완이나 연수 캐릭터가 내린 판단이 옳았었던 걸로 나오죠. 그래서 사람 앞에서만큼은 이성적이지 못한 해준의 모습을 약간 부각시키는 그런 장치로 수완하고 연수를 활용한 건 아닌가 생각했어요. 재밌어요. 영화만 봤을 땐 보이지 않던 부분들이 이렇게 보이는 게.